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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방편품

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17

by 민간인김대희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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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자유자재의 경애를 밝히다

 

 "무량(無量), 무애(無礙), 역(力), 무소외(無所畏), 선정(禪定), 해탈(解脫), 삼매(三昧)가 있으며 깊이 무제無際)에 들어가서 일체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성취했노라"

 앞에서 "무량" "무애" "역" "무소외"는 부처가 법을 설하는 데 있어 자유자재의 경애를 나타낸다고 설명한 바 있다.

 

 

◆ 무소외=사자후의 언론전을

 

 그 중 "무소외"란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고 용감하게 법을 설한다는 뜻이다. 설법에 임한 부처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말한다.

 여기에는 "사무소외"가 있다.

 즉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고 단언하는 것(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묘법에 대한 대확신이다.

 번뇌를 영원히 극복했다고 단언하는 것(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 번뇌, 괴로움에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하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도를 방해하는 번뇌, 장마(障魔)에 대해 설하는 것(설장법무외(設障法無畏)). 삼장사마(三障四魔)를 극복하도록 격려해 가는 것이다.

 성불을 향한 길을 사람들에게 설하는 것(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여기에 행복의 길이 있다고 끝까지 호소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말할 때에 각각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외이다. 요컨대 '대확신에서 솟아나오는 용기'이다.

 불법을 홍통하면 반드시 난이 일어난다. 석존도 대성인도 그것을 알고 계셨지만 종교계의 권위나 정치권력자 등에게 당당히 사자후의 언론전을 전개하셨다. 그것이 "무소외"이다.

 또 대성인은 문하에게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하셨다. 니치렌 제자는 겁쟁이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일"(어서 840쪽)이라고 하시며, 南無妙法蓮華經의 대음성으로 정의를 끝까지 말해 가시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법화경 용출품에 설해져 있는 "교어난문답(巧於難問答) 기심무소외(其心無所畏)(개결 493쪽)-어려운 문답에 뛰어나며 그 마음 두려워하는 바 없느니라-의 정신은 거기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용출품의 경문에는 지용의 보살이 난문답 즉 어려운 법론에 아주 능하여서 상대를 두려워하는 마음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설해져 있다. 지용의 보살은 문답에 아주 능하였다. 그리고 어떠한 강적일지라도 용감하게 맞서갔다.

 두려워하고 있어서는 상대의 마음에 울리지 않는다.

 또 지혜도 솟지 않을 것이다.

 

 

◆ 홍교의 사람을 소중하게 이것이 부처의 마음

 

 닛코상인은 "교어난문답의 행자에 있어서 선사(先師)와 같이 소중히 해야 할 것"(어서 1619쪽)- 난문답에 아주 능한 행자에게는 선사(니치렌대성인)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칭찬하고 소중히 해 가시오-라고 말씀하셨다.

 홍교하는 사람을 더할 나위없이 소중히 하. 그것이 니치렌대성인의 마음이시고 닛코상인의 명령이었다.

 지금의 종문은 그 가르침을 걷어차고 짓밟아, 미증유의 '홍교의 사람'의 모임인 창가학회를 박해한 것이다.

 웅변의 사람은 광포의 보배이다. 그리고 진정한 웅변이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납득시키는 힘이다.

 어떠한 대학자라도 설득할 수 없었던 상대가 부인부의 한마디에 납득해 버린다. 이러한 광경이 우리 창가학회에사는 드물지 않다. 이것이 지혜의 힘이고 인격의 힘, 신심의 힘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중상의 폭풍속, 오만한 비판의 바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끈기있는 정의의 대화를 펼쳐오셨다. 여러분이야말로 "무소외"의 사람, "교어난문답"의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인간 속에서

 

 방편품의 글월에서는 계속해서 부처가 "선정" "해탈" "삼매"를 구비하고 있고, 깨달음의 경지에 깊이 들어가서 일찍이 없던 대법을 체득했다고 설해져 있다. 이와 같은 확고부동한 경지에 있기 때문에 부처는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민중 속에서 법을 계속해서 설해갈 수 있었다.

 

 

◆ 부처는 "민중을 위해 고뇌하고" 대법을 홍통

 

 앉아서 명상만 하는 부처는 없다. 민중을 위해 고뇌하고 행동하고 사람들의 괴로움을 해결해야만 부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광포 도상(途上)의 여러 문제로 고뇌하고 그것을 위해 기원하고 있는 그 자세야말로 존귀하다. 하루하루 벗을 위해, 광선유포를 위해, 인재육성을 위해 고뇌하고 계신다. 고뇌하는 것이 보살이다. 고뇌해야만 부처의 경애가 될 수 있다.

 또 광포에 도전하는 모습 자체가 이미 부처의 행동에 통하고 있다.

 전회(前回)에 말했듯이 이 경문에 나타나 있는 '부처의 지혜' '부처의 힘'은 어본존의 경애이고 어본존을 수지하는 우리들도 이 경애로 될 수 있다. 또 "선정" "해탈" "삼매" 등이 지금으로 말하면 근행 · 창제에 포함된다는 것도 이미 말한대로이다.

 즉 우리들이 광포를 위해 진지하게 고뇌한 몫만큼, 어본존께 제목을 올린 몫만큼 이러한 제불의 지혜와 힘이 전신에 넘쳐 흐른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경문을 몸으로 읽은 것에 통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라고 해도 일찍이 없는 지혜라고 해도 구체적으로는 '어본존에 대한 대확신' 이외에 없다.

 

 

(법화경 신해품 제 4에 "무상보취(無上寶聚) 불구자득(不求自得)"이라고 있다. '무상의 보취를 구하지 않고도 스스로 얻었다'라고 해석한다. "보취"란 보물이 모인 것. 마하가섭 등 4명의 성문이 그때까지 성불할 수 없다고 되어 있던 성문도 성불할 수 있다는 설법을 듣고 기뻐서 한 말. "무상의 보취"란 부처의 생명을 말하며 니치렌대성인은 南無妙法蓮華經의 어본존으로 도현하셨다.

 

 

https://im.newspic.kr/AJg3k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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