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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방편품

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⑫

by 민간인김대희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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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광포에 사는 "인연"

 행 불행의 원인은 일체 자기 자신 속에 있다.

 

 

◆ 인연-불행의 "원인"에 대한 눈을 열게 하다

 

 본래,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란 원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 인연, 유래, 연계 등의 의미도 있다.

 예를 들면 불전(佛典)에는 아육대왕(阿育大王)의 인연이 설해져 있다. 덕승동자와 무승동자라는 두 명의 어린아이가 있어, 어느 때 덕승동자가 석존에게 흙떡을 공양하고 무승동자는 합장을 했다. 석존은 종자(從子)인 아난(阿難)에게 "이 덕승동자는 아육대왕이라는 왕이 되어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에 이 덕승동자는 부처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빈두사라왕(頻頭娑羅王)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것이 아육이다.

 이전경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명에 엄연히 '원인, 결과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자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 사명을 생각해내면 승리할 수 있고, 힘이 난다.

 

 법화경의 인연에는 더욱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부처와 민중의 생명의 연대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삼천진점겁, 오백진점겁이라는 구원의 과거이래 부처와 중생의 관계이다.

 도다선생님은 이 법화경의 인연의 의의를 근거로 하여 "종종인연(種種因緣)"에 대해 문저(文底)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종종의 인연이란, 우리들은 구원원초에 있어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의 권속(眷屬)이었다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지금 말법에 니치렌대성인의 제자로서 고뇌에 빠진 이 일본에 니치렌대성인 멸후 6백 몇십년 만에 가난뱅이로 태어나, 이 어본존을 믿고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광선유포를 한다는 약속을 해온 인연을 생각해 낸다면 가난 따위의 고뇌는 일시에 해소됩니다-라고.

 우리들이 금세에 여러 가지 번뇌와 격투하는 모습은 묘법의 공력(功力)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들은 구원부터 묘법유포를 약속하고 '지금' 사명을 위해 태어났다. 고뇌에 빠진 채 헤어나지 못하는 지용의 보살이란 있을 수 없다. 고난에 패한 지용의 보살따위는 없다. 불법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여 태어난 인연을 자각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한 사람의 승리가 만인의 예증(例證)

 다음에 "종종인연(種種因緣)"의 "비유"란, 이전경에서 설해 온 '비유하며 한 말'을 가리킨다. 그대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법의 진리도, 자연의 도리나 가까운 생활상의 예를 통해서 이야기하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근본은 사람들에 대한 자비이다. 자비의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알기 쉽게 해주자'라고 하여 오묘한 비유를 설하셨다.

 부처는 사람들의 기근에 의하여 모든 현상, 눈에 보이는 것을 비유로써 사용한다.

 

 

◆ 비유-불법의 진리를 세간의 "도리"에 맡겨서

 

 예를 들면 이전경에서는 번뇌를, 사람을 떠내려 보내는 '격류'에 비유하고, 불성(佛性)의 빛을 가리는 '덮개'에 비유하고, 심신을 불태우는 '불'에 비유하고, 다대한 해(害)를 주는 '독'에 비유하고, 길을 잃으면 나올 수 없는 '밀림' 등에 비유했다.

 이처럼 번뇌의 두려움을 가르쳐 번뇌로부터 떠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번뇌로부터 떠나는 것만이 부처의 깨달음은 아니다. 이전경의 비유는 어디까지나 부처의 지혜의 일면을 비유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비유에 집착하게 되면 부처의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질 해(害)가 있다.

 부처의 깨달음, 지혜를 그대로 열어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근본의 법인 南無妙法蓮華經에서 되돌아볼 때, 법화경 28품을 포함하는 일체경은 모두, 南無妙法蓮華經의 어본존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던 장대한 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 "저 웅자(雄姿)를 보라" "나의 실증(實證)을 보라"

 

 또 문저의 입장에서 보면, 생활상에 나타나는 신심의 실증은 어본존의 공력(功力)을 설명하는 비유이다. 현실생활의 실증이라고 하는 '비유'는 어본존의 진리를 실로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도다선생님은 "종종비유"에 대해, 대성인 재세 당시의 신도가 사신홍법(死身弘法)에 면려하여 공덕받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비유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당시, 활약한 문하는 후세의 거울읻. 직장에서 고난을 극복한 시조깅고, 신심을 반대했던 부친을 입신시킨 이케가미형제, 병마의 숙업을 단절하고 후계의 사명에 살아간 난조 도키미쓰, 죽은 남편의 몫까지 투쟁해낸 묘이치니 부인 등.

 고경을 극복한 문하들의 실증의 모습은 같은 문제에 직면한 우리들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고 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변없다. 우리들의 체험담도 같은 원리이다. '한 사람'의 승리의 체험은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과 납득을 준다.

 당신이 승리하는 것은 '만인이 승리할 수 있다'는 훌륭한 예증(例證)이 된다.

 당신이 곤란에 이기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나도 이길 수 있다' '저 사람도 이길 수 있다' '모두가 이길 수 있다'라는 확신을 준다.

 묘법의 힘을 말하는데 있어 '예를 들면 저 사람을 보아라' '예를 들면 저 인간혁명의 모습을 보아라'라고, 사람들은 당신의 승리를 '비유'로 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사람들을 위해 인간혁명의 많은 드라마를 나타내 가야겠다. 자신의 인생을 많은 "종종인연" "종종비유"로 장식하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지역을 저 사람도 이겼다, 이 사람도 행복하게 되었다라는 다종다양한 인간혁명의 "종종비유"로 화원과 같이 꾸며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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