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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방편품

이케다 SGI회장의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②

by 민간인김대희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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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無妙法蓮華經 방편품(方便品) 제이(第二)

 

爾時世尊 從三昧 安詳而起 告舍利弗

 

이시세존 종삼매 안상이기 고사리불

 

諸佛智慧 甚深無量 其智慧門 難解難入

 

제불지혜 심심무량 기지혜문 난해난입

 

一切聲聞 壁支佛 所不能知

 

일체성문 벽지불 소불능지

 

 

 

해설

 

그때 세존께서 삼매(三昧)로부터 안상(安詳)히 일어서서 사리불에게 고(告)하여 가로되, 제불(諸佛)의 지혜는 심심무량(甚深無量)하니라. 그 지혜의 문(門)은 난해난입(難解難入)이니라. 일체의 성문(聲聞)과 벽지불이 쉽게 알지 못하는 바이니라.

 

 

 

통해

 

그때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들어가 있던 석존은 서서히 엄숙한 태도로 일어서시어 (지혜제일이라고 불리던) 사리불에게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모든 부처의 지혜는 한없이 깊고 또한 끝이 없다.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이 부처의 지혜는) 모든 성문(聲聞)이나 벽지불〈연각(緣覺)〉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다.”

 

 

 

어구해설

 

【세존】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 부처를 가리킨다.

 

【삼매】 선정(禪定)을 말하며 일념을 정하고 맑은 부동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 무량의처삼매는 무량의를 낳게 하는 근원의 일법(一法: 묘법)에 마음을 정하고 사색하는 경지를 말한다.

 

【사리불】 석존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사람.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고 일컬어졌다. 외도(外道)등을 파절하고, 석존의 교단(敎團) 발전의 핵으로 되었다. 개삼현일(開三顯一)의 법을 듣고 영해(領解)했다.

 

【성문】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제자를 말한다.

 

【벽지불】 독각(獨覺), 연각(緣覺), 인연각(因緣覺)이라고 번역한다.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연 현상 등의 연(緣)에 따라 불법의 법리를 혼자 스스로 깨닫는 사람을 말한다.

 

 

 

강의

 

드디어 법화경의 설법이 시작된다. 이 모두(冒頭)부분에서는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로부터 일어난 석존이 사리불을 향해 "제불(諸佛)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다. 너희들은 알지 못한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갑자기 긴박한 장면이다.

우선 "그때"란 어떠한 때일까.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강의하셨다.

"'그때'라고 하는 때는 보통 우리들이 사용하는 2시, 3시, 몇 시, 봄의 시절, 시간 따위와는 다르며 불법상에서 사용하는 시간이다.

즉  '그때'란 옛날이야기에서 말하는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 등과는 다르다. 중생이 있어 부처를 느끼고, 부처의 설법을 드고 싶다고 느꼈을 때에 부처는 거기에 응해 출현하여 설법했을 때라고 읽는 것이다"라고.

부처의 설법에는 시(時)·응(應)·기(機)·법(法)이라고 하는 네 개의 조건이 반드시 갖추어져 있다. 불법에서 말하는 "때"란 가르침을 구하는 중생의 '기(機)'에 "응(應)"하여 부처가 출현하여, 법(法)을 설하는 "때", 즉 부처와 중생이 만나는 "때"이다.

 석존이 서품(序品)에서 삼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사리불 등 이승(二乘)을 비롯하여 제자들의 구도의 마음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세존은 어떠한 가르침을 설하실 것인가'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들어야지'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야겠다' 불타오르는 정열을 억누르면서 모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스승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제(師弟)의 "인간 구제의 "극(劇)"이 개막

 

 그리하여 때는 무르익었다. 석존은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구극(究極)의 가르침 "법화경"을 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방편품의 "그때"이다.

 즉 그것은 전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가 일어선 "때"이며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끝까지 구하는 일념을 정한 "때"이다. 사제(師祭)의 마음과 마음이 깊게 교류하는 순간이다. 인간 구제에 살아가는 '사제의 드라마'의 개막이다.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때를 아는' 것이 부처이다.

 "때"를 기다리고 "때"를 꿰뚫어 보며 "때"에 맞는 법을 설한다. 이것이 부처의 지혜이며 자비이다.

 민중이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민중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떠한 가르침을 설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을 항상 사색하고 때에 응해 자유자재로 법을 설한다. 그것이 부처이다.

 그런 의미에서 "때를 안다"란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기도 하다. 부처란 사람들의 마음에 통달한 지도자이다.

'혼의 교사'이며 '인간학(人間學)의 달인(達人)'이다.

 부처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때"란 바야흐로 중생을 성불시키는 투쟁 개시의 "때"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부처의 마음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강한 자각을 가진 "때"라고 해도 좋다.

 

 

◆"그때"란 '스스로 결정하여 일어서는 때'

 

"때"의 중요성에 대해서 대성인은 "불법을 배우는 데는 우선 때를 배워야 한다"(어서 256쪽, 취의)라고 지적하시어, 불법은 때를 기축(基軸)으로 해서 설해지고, 때에 맞는 법이 유포(流布)되어간다는 것을 밝히시고 있다.

 그리고 말법이야말로 南無妙法蓮華經의 大白法이 넓혀지는 "때"라고 선언하시고, 正法弘通, 민중 구제의 싸움을 일으키셨다.

 즉 文底佛法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때"란 '어본불 日蓮대성인이 전인류를 구하는 대투쟁을 개시하신 때'라고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대성인 문하가 스승에게 서로 호응하여 스스로 광선 유포에 일어서는 때가 "그때"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실천에 있어서는 어본존에게 기원하고, 자신이 '결의'하여 '자각'한 때 이외에 "그때"는 없다고 강조해 두고 싶다. 자신이 정해 기원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환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그때"로는 되지 않는다.

 "때"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일념이다. "그때"란 '나의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 '스스로의 결의와 힘으로 일어서는 때'이다. 강한 신심으로 장대한 광포의 무대에서 활약해 가는 때가 "그때"이다.

 문호 괴테는 썼다.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그리고 그의 운명 전체에 있어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다만 순간뿐"이라고.

 "자, 지금이야말로 싸우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정한 순간이 "그때"인 것이다. 이 순간부터 '운명'이 바뀐다. '인생'이 열린다. '역사'가 시작된다.

 이것이 본인묘(本人妙)의 정신이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원리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의한 "때"야말로 "그 때" 사명의"때"이다.

 

 

무량의(無量意)란 (一法)에서 생긴다

 "삼매(三昧)에서 안상하게 일어나서"

 방편품 모두(冒頭)에서 석존은 삼매로부터 조용히 일어나 법화경 설법을 시작한다. "삼매"란 선정(禪定)을 말하며 일념을 정하고 명경(明鏡)처럼 맑은 부동(不動)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석존은 서품(序品) 첫머리에서 이 삼매에 들어가 서품에서 그것을 계속하고 있었다.

 삼매나 선정이라고 해도 말법에서는 산림에 틀어박혀 좌선이나 명상 등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성인은 그것을 때에 적합한 실천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계신다. 대성인은 민중을 구제하시기 위해 현실사회 속에서 싸우셨다.

 

 

◆근행(勤行)·창제(唱題)가 현대의 "삼매(三昧)"

 

말할 나위도 없이 현대의 참된 "삼매" "선정"이란 근행·창제의 실천이다. 근행·창제를 근간으로 나날이 생명을 연마하고 무량한 무량한 지혜와 용기를 용솟음치게 하여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그것이 우리들의 불도 수행이다.

 명상을 위한 명상, 선정을 위한 선정이라면 본말전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마경(維摩經)에도 나무 밑에서 명상하는 것보다 현실사회에서 진리를 간직하고 활약하는 것이 참된 선정이라고 분명히 설해져 있다.

 저 마하트마 간디에게 어떤 삶이 명상생활을 권했을 때 "나는 굳이 동굴에 은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동굴을 등에 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민중 속에서 '행동' '실천'을 위해 끝까지 살았던 간디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말해주는 에피소드이다.

 불교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도외시하는 종교가 아니다. 사람들을 자각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불도(佛道)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다. 사회의 모순을 외면하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을 추구하는 것이 불도 수행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며 자타(自他)의 행복을 위해 좋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일념을 다해 싸우는 모습 속에 참된 선정의 정신이 있다.

 

 

◆나날의 생명의 원점에서 발랄하게 출발

 

 그런데 석존이 들어가 있던 삼매는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라는 이름의 삼매이다. 무량의처란 모든 가르침의 기초라는 의미이다. 무량의경에는 "무량의(無量義)란 일법(一法)에서 생긴다."(개결 84쪽)고 있다. 석존은 그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로부터 일어서서 법화경을 설한 것이다. 이 '일법'을 명확하게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밝히신 분이 니치렌(日蓮)대성인이다. 우주 근원의 일법을 모든 사람에게 열고, 모든 사람이 실천할 수 있도록 나타내신 것이다. 새계를 향해, 인류를 향해... 대성인이 전민중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여 南無妙法蓮華經를 설하시기 위해 일어서신 모습이야말로 "삼매에서 안상하게 일어나서"라는 문저(文底)의 의미이다. 또 우리들의 입장에서 실천적으로 말한다면 '일법'에서 '무량의'가 생긴다는 것은 바로 이 묘법을 신수하면 부처의 무량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근행·창제로 우리들은 최고의 지혜를 빛내 현실에서 인생승리를 향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나날이 생명의 원점에서 발랄하게 출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 오늘도 싸우자' '내일도 열심히 하자'고 결의를 담아 기원하고 일어서는 학회원은 매일아침, 매일밤 "삼매에서 안상하게 일어나서"의 경문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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